KYOUHONG LEE SOLO EXHIBITION
이규홍
Kyouhong Lee
October 16 - November 08, 2025
Exhibition Detail

<이규홍 개인전>은 유리라는 매체를 가장 치열하게 탐구하며 유리 예술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이규홍의 예술 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망한다. 본화랑, 웅갤러리, 갤러리 비앤에스 세 개의 갤러리에서 동시 개최되는 이번 연합 개인전은 각기 다른 공간에 따라 다채로운 구성을 선보이며, 유리 예술이 보여줄 수 있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드러낸다. 블로잉, 캐스팅, 스테인드글라스 등 다양한 제작 방식을 통해 구현된 작품들은 평면에서 입체, 설치에 이르기까지 장르의 경계를 유연하게 가로지르며, 공예의 범주를 넘어선 조형적 가능성과 예술의 확장성을 제시한다. 수십점에 이르는 작품들로 구성된 개인전은 단순한 작품의 집합이 아니라, 작가가 오랜 시간 축적해온 창작의 궤적과 예술적 지향을 응축하여 보여주는 하나의 아카이브적 전시라 할 수 있다. 


이규홍은 국민대학교 조형대학을 졸업한 뒤 영국으로 건너가 에든버러 예술대학에서 유리를 전공하며 한국 유리 예술의 대표적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2023년에는 로에베 재단 공예상 파이널리스트로 선정되어 노구치 미술관에서 작품을 선보이는 등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그는 재료의 본질을 탐구하는 동시에 기법을 독창적으로 융합함으로써 표현의 경계를 확장하는 실험적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작품 세계는 크게 입체 오브제, 평면 작업, 건축 유리 작업으로 나눌 수 있다. 입체 오브제는 블로잉으로 제작된 <자연의 침묵> 시리즈와 유리 캐스팅과 옻칠을 결합해 기억의 단편을 재창조한 <시간의 흔적>이 대표적이 다. 평면 작업인 <빛의 숨결>과 <빛의 부유>는 유리의 물성과 빛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며, 정중동의 미학을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건축 유리 작업은 전통적 스테인드글라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프로젝트로, 최근에는 그 양식을 병풍에 접목해 새로운 예술적 형태로 확장시키고 있다. 이렇듯 그의 작업은 서로 다른 형식을 넘나들며 유리와 빛이 빚어내는 예술적 아름다움을 다각도로 펼쳐 보인다. 


전시는 작가의 시리즈별 작업을 공간의 맥락에 따라 배치함으로써 유리 매체가 지닌 물성의 다면성과 그 미학적 깊이를 드러낸다. 우선, 개인적 기억에서 출발한 <시간의 흔적>이 전시 공간에 자리한다. 작가의 어린 시절에 보았던 맷돌, 다듬이돌, 짚바구니와 같은 정겨운 사물들, 그리고 그와 얽힌 개인적 기억의 조각들은 유리를 통해 다시 소환 된다. 작가가 말하듯, 유리는 보이지 않는 것, 영적인 것, 그리고 이미 사라진 것을 은유적으로 되살리는 최적의 매체다. 유리의 투명성과 반사성은 기억과 시간, 실재와 비실재의 경계에서 보이는 것 너머의 차원을 감각하게 한다. 이렇듯 오래된 사물을 유리로 형상화한 작품은 단순한 회상을 넘어 시간과 기억의 층위를 시각화하며, 과거를 현재와 이어주는 매개로 확장된다. 


<시간의 흔적> 시리즈 중 다완이나 사발을 연상시키는 작품들은 전시장 중앙에 모여 배치되며, 연못 위에 퍼져 나 가는 물결이나 우주의 행성 군집처럼 집단적 질서를 이루며 공간을 형성한다. 각각의 형태는 호박 보석 같은 깊은 빛을 품어내며, 오랜 세월 땅속에 응축되었다가 마침내 드러난 귀한 아름다움처럼 시간의 밀도를 머금은채 모습을 드러낸다. 유리는 뜨겁게 달구어졌다 식는 과정에서 기포와 결, 색의 변화를 품어내며, 그 자체로 시간의 흔적을 드러낸다. 여기에 더해진 옻칠과 금박은 변색되지 않는 영속성을 지닌 재료로서, 또 하나의 시간적 층위를 부여한다. 이렇게 탄생한 작품들은 자연의 숨결을 담아내듯, 표면은 찰랑거리는 물을 떠올리게도 하고, 서늘히 빛나는 얼음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 표면 위에서 관람자는 끊임없이 변주되는 심상의 파동을 마주하며, 시간과 자연, 기억이 서로 교차하는 시적 순간 속으로 이끌린다. 


이규홍 작가의 또 다른 시리즈인 <빛의 숨결>, <병풍 시리즈>는 유리의 물성과 빛의 현상적 차원에 주목한 작업이다. <빛의 숨결>은 에칭된 거울 위에 채색을 더하고, 유리에서 쪼개진 빛 덩어리를 붙여 완성된다. 그 표면은 멀리서 바라보면 고요하고 잔잔하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끊임없는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빛의 파동으로 일렁인다. 그 환영 속에는 고요 속의 역동, 혼돈 속의 평온이라는 상반된 질서가 공존하며, 동양 철학의 정중동이 깃들어 있다. 한편, 빛이 스며드는 공간 한켠에 자리한 <병풍 시리즈>는 오래된 나무 창틀과 비정형의 색유리를 결합하여, 스테인드글라스의 효과를 구현한다. 이 작업은 유리가 단순히 빛을 투과시키는 것을 넘어, 빛을 색채로 전환하여 무한한 빛의 공간을 펼쳐 보이는 창이 된다. 이처럼 두 연작은 서로 다른 형식 속에서도 유리로 피워낸 아름다운 빛의 향연을 통해, 물질 너머의 비물질적 감각을 일깨우며 깊은 울림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자연의 침묵> 시리즈는 입체 오브제를 설치한 작업으로, 유리라는 매체에 새겨진 기억의 풍경을 불러낸다. 블로잉으로 제작된 투명하면서도 풍성한 유리의 볼륨은 마치 햇살 속에 매달린 홍시처럼 빛을 머금고 있다. 작가가 어린 시절 머물던 진도의 마당, 감나무 아래에서 뛰놀던 기억은 유리 속에 결정화되며, 개인적 체험은 보편적 정서로 확장된다. 붉은 열매를 닮은 유리 오브제들은 하나하나가 과거의 감각을 불러내는 추억의 매개이며, 자연과 기억이 빚어내는 감각의 충만함이다. 유리 빛에 번지는 서정적 풍경 속에서 햇살과 바람, 어린 시절의 웃음이 되살아나며, 따스한 빛이 마음을 물들이는 순간이 펼쳐진다.